잘 배운 사람의 따뜻한 말투를 좋아한다.
한동일 작가님의 글은 늘 온화하다.
통속적이고 뻔한 공부 방법을 논하는 내용이 아니라 좋았다.
그런 류의 글을 기대하고 본 건 당연히 아니었지만-
공부법이라기보단 오히려 인생 공부법, 또는 삶 공부법을 논했다고 해야 할까.
아니 어쩌면 애초에 ’한동일의‘ 공부법이라 했으니,
이러나 저러나 들어맞는 제목이긴 한 것 같다.
작가님의 책은
읽을 때마다 매번 포스트잇이 다닥다닥-🔖
기록해 두고픈 구절이 한 페이지 건너 한두 개씩은 나오는 듯하다.
페이지 기록하며 좋은 구절 구구절절 타이핑해 놓는 리뷰를 가장 선호하지 않는데,
이번에도 내 취향은 제쳐두고 일단 기록해 두어야겠다.
P.10
저는 좋은 목적을 가지고 공부하는 분들이 많을수록 우리 사회가 더 좋은 방향으로 발전한다고 믿습니다. 이런 분들이 사회적 통증을 줄여주리라 생각하는데, 공부하는 분들의 마음에도 그런 원의를 심어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이 맞닥뜨린 어둠은 진짜 어둠이 아닙니다. 불안하고 초조하다면 잘해나가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현실이 가져다준 통증으로 인해 자주 아프고 힘들더라도, 배움과 깨달음의 희열이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와 그 아픔을 이기는 힘이 되길 바랍니다. 그리고 다시 그 배움을 가치 있게 또 다른 사람들과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P.75
나무를 가장 정확히 볼 수 있는 계절은 언제일까요? 바로 겨울입니다. 풍성한 녹음도 화려한 단풍도 모두 진 나무의 가장 적나라한 모습이 보입니다. 계절이 바뀌어도 변치 않고 그대로인 나무의 본모습 말입니다. 가지가 얼마나 많고 어느 곳을 향해 뻗어 있으며 모양은 어떠한지....... 나무와 더불어 산의 모습도 정확히 보입니다. 산에 있는 모든 나무가 나뭇잎을 떨구고 자신의 모든 걸 있는 그대로 드러낼 때 산도 능선과 골짜기를 더 또렷하게 보여줍니다.
P.119
오랜 가뭄으로 단단히 굳은 땅은 약간의 비로는 충분히 적실 수가 없습니다. 그런 비는 지표면만 적시다가 그대로 말라버립니다. 대지를 흠뻑 적실 정도로 충분히 와야 개울이 되고 강이 돼 바다로 흘러갑니다. 종종 배운다는 것, 공부한다는 건 마치 '하늘에서 내리는 비'와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공부도 내 안에 그 양이 얼마나 쌓이는지 알 수 없는 가운데, 좋은 성적을 내거나 스스로 실력이 향상됐음을 느낄 정도가 되려면 땅속까지 충분히 적시고 밖으로 흘러넘치는 빗물과 같아야 합니다. 그전까지는 수없이 걱정하고 스스로에게 실망하곤 합니다.
P.131
Qui se ipsum norit(noverit), aliquid se habere sentiet divinum.
스스로를 아는 사람이라면 자신이 신성한 무엇을 간직하고 있음을 느끼리라.
P.152
인간의 삶에 대해서는 수없이 많은 정의가 있지만요. 저는 사람이 "완성돼 끝나는 게 아니라 소모돼 끝나는 겁니다"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일 때가 많습니다. 인생의 마지막에는 필연적으로 죽음이 기다리고 있는데 죽음이 삶의 완성은 아닙니다. 그저 한 생명체의 모든 기능이 완전히 소모돼 끝나는 것일 뿐, 죽음으로 모든 게 끝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P.235
웰빙과 웰다잉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지만 그보다 앞서 웰싱킹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웰싱킹은 시험 문제를 풀 때만 가동되는 급조된 사고력으로는 할 수 없습니다. 긴 시간 동안 풍부한 인문학적 사유를 했을 때, 그게 누적되어 발현될 수 있습니다. 세계는 빠르게 미래의 시간으로 달려가고 있고 개인들은 그 시간을 점점 예측하거나 준비하기가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한 가지 분명한 건 국가든 사회든 개인이든 거기에 열광할 콘텐츠가 있느냐가 갈수록 중요해진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좋은 콘텐츠라 해도 철학적 사고의 빈곤은 언제든 치명적인 불안 요소가 될 수 있습니다.
P.258
우리는 단번에 성공하고, 단번에 좋은 결과가 나오길 바라지만 단번에 잘 되는 건 많지 않습니다. 당장 읽어야 할 책은 진도가 안 나가서 조바심이 나고 읽을수록 모르는 게 많아 불안하기만 합니다. 하지만 그런 마음이 드는 건 공부를 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공부하고 있기에 불안한 겁니다. 모르는 게 늘어가는 게 아니라 모르는 걸 인지해서 알아가는 중이거든요.
P.300
Docto homini vivere est cogitare.
현명한 사람에게 산다는 건 사유한다는 것이다.
P.319
저는 학생들에게 해준 게 없다고 생각하는데 어떤 학생이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교수님, 왜 이렇게 저에게 많은 걸 주시나요?"
"원래 그것은 내 것이 아니라 나를 통해 너에게 갈 것이 간 것뿐이다."
우리는 내 것으로 생각하지만 내 것이 아닌 게 너무 많습니다. 우리는 모두 세상에 빚을 지고 삽니다. 똑똑한 사람일수록 자신의 성취를 혼자 이룬 것처럼 생각할 수 있지만 큰 인물일수록 그가 이룬 성공의 바탕에는 수많은 사람과 교류하며 도움을 주고받은 관계가 거미줄처럼 얽혀 있기 마련입니다.
*
중간중간 등장하는 라틴어 구절들도 너무 좋다.
이 책 역시 나중에 재독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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